한양의 연혁
한양조씨 기록
line

Home - 한양조씨 기록 - 한양조씨의 역사 - 한양의 연혁


한양의 연혁

우리의 본관인 ‘한양’이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그 근원을 살펴본다. 


한양은 조선 왕조의 수도로서 62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1392년 개경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하고 2년 후 한양으로 옮긴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 민족사의 중심이 되어 왔다. 


한강 유역에 위치한 지금의 서울 지역은 아득한 옛날부터 선인들의 생활의 터전,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즉 삼국시대 초기 백제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고 남진정책에 성공한 고구려가 한 때는 북한산군을 설치하고 남평양으로 불렀다. 신라 진흥왕은 이곳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순수비巡狩碑를 세웠고 신라 통일 이후에는 9주州 중의 하나인 한주漢州 소속의 한양군이 되었다가 후고구려의 궁예에게로 돌아간다. 


고려 초에 양주, 충렬왕 때 한양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 때 천도 후 종묘․ 궁궐․관아․성곽 등의 여러 시설을 갖추고 한성부라 하고 경기도 양주목에 붙였다. 태조가 개국과 함께 천도를 서두른 까닭은 새 왕조의 개창과 동시에 도읍지를 옮겨 군신 상하 간에 심기일전心機一轉을 꾀하고, 고려조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한양이 천도지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양부는 경기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광주부, 서쪽은 양천현, 남쪽은 시흥현, 북쪽은 양주목에 접하고 사방이 낙산, 남산(목멱산), 한강, 인왕산, 북악산으로 첩첩이 둘러 싸인 천혜天惠의 요지이다.

이로부터 중앙정부라 하여 한양으로 호칭하다가 광무제 때 황성⋅한성부, 일제 때 경성부, 광복 후 원래 나라의 도읍지를 뜻하는 일반적 칭호인 서울로 오늘에 이르렀다. 태조 3년 도읍을 정한 다음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의 5부部 52방坊으로 구획하였다가 갑오경장 때 부가 서署로 개칭되고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한성부를 경기도 경성부의 성 안의 5부部와 성 밖의 8면面으로 고쳤는데, 1943년 7개 구區가 현재는 면적 627㎢의 25개 구 343개 동洞에 인구 천만 명이 넘는 국제적인 대도시가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눈부신 발전으로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의 중심이 된, 서울은 대대손손 영원히 지켜야 하는 ‘명문名門 한조漢趙’의 영원한 고향이다.

한양의 옛 지도

한양의 옛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