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본관
한양조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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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본관

본관이란 시조 혹은 중시조의 출신지와 씨족의 세거지를 근거로 정하는 것으로서 관향, 본적, 

관적이라고도 한다. 동성 만으로는 동족을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상의 출신지에 성을 

붙여서 동족임을 표시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일부 상층 계급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이 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본관은 고려 초부터 시작되어 고려 전기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본관 중 20개 이상의 

성씨를 본관으로 삼고 있는 지역은 고려 시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개성, 충주, 청주, 전주,

 나주, 안동, 성주, 경주 등이다. 본관은 원래 문벌이 사회적으로 유효한 역할을 하던 시대에 

이것을 내세워 자랑으로여기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본관은 발생하였고 환경의 변화가 있거나 권력을 지향하기 위해 개관改貫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의 초기 활동무대는 용진으로 고려시대 문주현, 문천

군으로 불리다 오늘날 함경남도 덕원군 북성면 용진리가 되었다. 

시조공의 후손들이 용진에서 세거하다가 조선 개국 때 한양으로 옮겨 크게 번성하고 명문거족

의 기반을 닦아 한양의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으니 고려조에서 용천부원군龍川府院君(휘 림

琳)⋅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휘 돈暾)⋅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휘 인벽仁璧)의 봉군封君은 선조들

의 고향이며 옛 자취가 남아 있는 용진을 따른 것이고, 조선조에서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

(휘 영무英茂⋅휘 인옥仁沃)⋅한천부원군漢川府院君(휘 온溫)⋅한평부원군漢平府院君(휘 연涓)의 

훈봉勳封은 본적지인 한양을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