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조 총관공 摠管公
한양조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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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조 총관공摠管公(휘 휘暉, 생졸년 미상)

쌍성총관 4대 99년간 세습

한글날 파주 4세위 제단서 시제

시조공의 차자이다. 1258년(고종 45년) 쌍성총관雙城摠管을 지냈고 삼중대광은청광록대부三重大匡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 

쌍성총관은 휘暉-양기良琪-림琳-소생小生까지 4대 99년간 세습되었다. 배위에 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고 1자1녀를 두었다. 

서천군西天君 정곤수鄭崑壽의 기록, 무송茂松 윤소종尹紹宗의 용성군전龍城君傳, 홍주이씨세보洪州李氏世譜에 의하면 1녀는 태자太子 첨사詹事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문강공文剛公의 아들 홍주인洪州人 이천소李倩笑와 혼인하였다.


1677년(숙종 3년) 송천공松泉公(14세 휘 위명威明, 문간공의 조카, 예조 참판)이 왕명을 받들어 북도北道의 모든 능소陵所를 봉심奉審할 때 묘비가 파손된 것을 발견하여 문중에 처음 알렸고, 1683년(숙종 9년) 양절공파의 충의忠義 세흥世興이 내외손들과 연명으로 장계狀啓를 올리고 와서 옮겼다. 1687년(숙종 13년) 후손 회양 군수 종저鍾箸와 외손 안변 부사 심수량沈壽亮이 비석을 다시 세웠다. 1819년(순조 19년) 다시 고치고 쌍성총관한양조휘지묘雙城摠管漢陽趙暉之墓라고 비를 세웠다.


총관기년摠管紀年 669년이 되는 1926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시종원侍從院 부경副卿을 지낸 23세 정윤鼎允이 공의 3대 유허遺墟인 함남 영흥군 영흥읍 삼사리 성역산 아래에 쌍성각雙城閣과 비를 건립하고 함남 7개군의 유림儒林 대표이며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인 능곡菱谷 윤병헌尹秉憲이 쌍성각 유적비명遺蹟碑銘과 현판문懸板文을, 1927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위당爲堂 인보寅普의 부父)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지제고知製誥를 지낸 포산苞山 곽찬郭璨이 기문記文을, 23세 진사進士 일원一元(양절공良節公의 17세손)이 병송並頌을, 정윤鼎允이 공의 공덕을 칭송하고『고려사高麗史』의 모함을 해명하는 창건설刱建說을 각각 썼다.

쌍성각

쌍성각

사계화

사계화

공의 묘 앞에 있는 나무로 우거져서 숲을 이루었는데 늘 사계절의 끝 달에 꽃을 피워 번성하면서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문득 시들어 죽고 피지 않는다. 이 꽃은 흡사 충신, 열녀와 같이 절개를 변치 않고 선영을 호위하는 뜻을 표하고 있어 정표旌表의 예禮로 특히 세보世譜에까지 사계화도四季花圖를 그려 넣고 후손 형원亨元이 1917년 서序를, 부경副卿 종서鍾緖(1859-1921, 문정공文正公 정암靜菴의 12세손, 신유합보辛酉合譜의 문장門長)가 찬贊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