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조 양렬 襄烈公
한양조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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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조 양렬공襄烈公(휘 인벽仁璧, 1328-1393)

문무 겸전으로 선정을 펴고  왜구를 격파

불사이군과 후진교화로 동명서원에 배향

호는 우계愚溪⋅해월정海月亭. 1356년(공민왕 5년) 아버지와 함께 동북면 병마사 유인우柳麟雨를 도와 쌍성을,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과 더불어 서경을 수복하여 호군護軍이 되었다. 


1363년 김용金鏞의 난을 토벌하고 홍건적 침입 때 개성을 수복한 공으로 수복경성收復京城 이등공신이 되고 1372년 이후 안주⋅함주⋅변주⋅북청⋅신주⋅옹진⋅문화⋅삼척⋅울진⋅우계⋅영월⋅안동 등지에서 왜구를 격파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올랐다. 1378년(우왕 4년) 판밀직判密直으로서 화포제조기술을 가르치고 수군을 훈련시켜 왜구를 격퇴하고 강릉도의 상원수上元帥가 되었다. 


1383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선정善政을 펴는 데 진력하고 동북면도체찰사東北面都體察使에 이어 교주도원수交州道元帥, 사도도지휘사四道都指揮使가 되었다. 

동명서원 사당 충현사.

동명서원 사당 충현사.

동명서원 삼문.

동명서원 삼문.

동명서원 전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543.

동명서원 전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543.

1388년 위화도 회군에 가담하여 순성익위협찬보리공신純誠翊衛協贊輔理功臣 삼중대광용원부원군三重大匡龍源府院君 삼사좌사三司左使겸 판소부시사判小府寺事에 오르고 이듬해 판의덕부사判懿德府事가 되었다. 조선조에서 추성양절익위보리좌명공신推誠亮節翊衛輔理佐命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 판도평의사사判都評議司事 영경연사領經筵事 한산백漢山伯에 증직贈職되고 양렬襄烈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고려 왕조가 회복불능 상태로 쇠망할 무렵 관직을 버리고 양양의 대포진 시상촌柴桑村으로 내려가 바닷 가에 조그만 집 한 채를 지어 해월정海月亭이라 이름하고 월촌月村 정만鄭慢, 강해江海 이장년李長年, 도사道師 혜선慧禪 등의 시우詩友들과 도의를 벗하면서 처남인 조선 태조 이성계가 지난 날 동고동락하던 의리를 생각하여 여러번 조정에 들어올 것을 권했으나 응하지 않은 채, 백의백립白衣白笠으로 살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굳게 지켰으므로 후세에 양양의 선비들이 공을 흠모하여 충현사忠賢祠를 세워 향사하고 동명서원東溟書院에 배향配享하였다. 양양에 낙향落鄕 후 학유學儒들을 문덕文德으로 순화계도醇化啓導하고 해월정에서 시우들과 유유자적하면서 지은 시에서 공의 풍도를 엿 볼 수 있다.


접시훈명박蝶翅勳名薄 공훈과 명예는 나비의 날개와 같이 얇기만 하고

용뇌부귀경龍腦富貴輕 용뇌같이 여기는 부귀는 가볍기만 하여라

만사경추몽萬事驚秋夢 모든 일은 가을 밤 싸늘한 꿈에 놀다 깨는 것이니

동창해월명東窓海月明 동창에 비친 바다의 달이나 쳐다보세

담담서산월淡淡西山月 서산에 걸친 달은 담담하고

애애공중운靄靄空中雲 공중에는 구름이 길게 드리웠네

산인불외호山人不畏虎 산 속에 사는 사람은 범도 두렵지 않아

영야불엄문永夜不掩門. 밤새도록 문도 닫지 않네.


문무를 겸해 도연명의 시를 좋아하였고 장한 충절은 고려 말의 삼은三隱과 나란히 하였다. 특히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는 7년이나 연상이었지만 외적을 격퇴하는 데서도 내치와 외교에서도 그리고 시우詩友로서도 생사고락을 같이한 막역한 사이였다. 전배前配 하동河東 정씨鄭氏(1326-1358)와 계배繼配 정화공주貞和公主(1345-1409)와의 사이에서 양절공⋅양경공 등 7자3녀를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사곶리에, 하동 정씨의 묘는 실전失傳되었고 정화공주의 묘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전재리에 있다.